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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평온함 아래 미칠듯한 내면이 날뛴다

고립감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올해 미국의 약 5780만 명의 성인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고 매년 4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통계는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존 카사베츠 감독의 1974년 작품 ‘영향 아래 있는 여자(A Woman Under the Influence)’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압력과 그로 인한 고통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특히, 70년대 여성의 정신 건강 문제를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섬세하게 다루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흐릿해지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은 몽타주 기법인 시점 쇼트와 반응 쇼트를 교차하며 관객을 주인공의 시선에 몰입시켜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반면 카사베츠는 시점 쇼트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탐구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특징을 보인다. 그는 시점 쇼트 이후 인물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관객 스스로 인물의 심리를 추론하고 영화의 의미를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일상적인 공간을 뒤틀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물의 불안정한 심리를 카메라의 움직임과 편집으로 생생하게 표현하여 관객을 깊은 심리적 혼란 속으로 끌어들인다.   주인공 메이블은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받는 세 아이의 엄마다. 그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낄뿐더러 불안과 고독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그녀의 불안정한 행동으로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모성애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단순히 ‘비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감정과 욕망을 가진 인간임을 시사한다.   남편 닉 역시 마찬가지다. 성실하고 정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가부장적인 태도와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얼핏 보면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금이 간 유리처럼 뒤틀려 있다. 닉은 표면적으로 메이블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형적인 가족의 이미지를 연기하는 데 집착한다. 메이블이 정신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가족과 밥을 먹을 때조차 그는 부인을 생각하기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메이블을 통제한다.     이는 정신적으로 괴로운 메이블이 의자에 올라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부르며 날갯짓을 하자 정점에 달한다. 닉은 이상행동을 하는 그녀를 보고 화를 누르지 못하고 힘으로 제압한다. 무력이 사용된 순간 이 관계는 수평적인 이해관계로 성립되지 않는다. 메이블의 절규는 정신적인 고통을 넘어,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에 대한 묵언의 항변처럼 들린다. 메이블은 날 수 없는 백조나 다름없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여성의 역할과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에 갇혀 자유롭게 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건축적인 특징 또한 메이블의 억압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층에 위치한 메이블의 침실은 곧 식당으로 사용된다. 이는 메이블이 개인적인 공간 없이 가족을 위한 헌신만을 강요받는 상황을 보여준다. 침실, 계단 옆 통로, 부엌, 화장실까지 이어져 있는 주택의 구조는 메이블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자유를 억압한다. 통 유리된 메이블의 방 또한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그의 삶을 반영한다.   영화는 부부가 아이들을 재우고 집안을 정리하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다만 그 이면에는 깊은 균열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내면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씁쓸함과 함께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카사베츠는 이 영화를 통해 70년대 여성들이 겪었던 사회적, 심리적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메이블의 정신적인 불안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의 결과라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영향 아래 있는 여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정하은 기자 [email protected] 비정상 사회적 심리적 사회 구조 가족 구조

2024-08-07

도시가 죽인 ‘경아’ 커다란 사회적 반향 일으켜

어니언스의 ‘편지’, 양희은의 ‘내 님의 사랑은’, 한대수의 ‘물 좀 주소’가 가장 인기 있는 노래로 각광받던 해, 육영수 여사가 암살당한 ‘8.15 저격사건’으로 대변되는 1974년은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였다.   70년대 한국영화계는 창조성 결여로 60년대의 부흥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70년대 시대적 상황을 통속적으로 그려낸 영화 ‘별들의 고향’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한국영화는 ‘별들의 고향’의 개봉을 계기로 침체기를 끝내고 다시 대중들의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 검열관인 아버지 덕에 신필림에 입사, 신상옥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던 이장호는 1973년 어린 시절 친구이며 서울고 동창인 소설가 최인호를 찾아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신문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을 영화화하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그의 천재성과 돌파력은 이듬해 신인 감독의 데뷔작으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영화 ‘별들의 고향’을 탄생시킨다.   ‘별들의 고향’은 시간순으로 이어지지 않고 화가 문오(신성일)가 호스티스 경아(안은숙)를 만나면서 경아의 과거 남자들(윤일봉, 하용수, 백일섭)과의 관계를 플래시 백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와 같은 비연대기적 진행 방식은 당시 영화계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착하고 순수하기만 한 경아는 남자들에게 무척 의존적인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4명의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며 버림받고 자학과 술로 세월을 보낸다. 눈 내리는 어느 날, 산속을 헤매다 수면제를 먹고 눈밭에 쓰러져 영원한 잠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경아의 불행은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사회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그녀를 죽게 한 건 4명의 남자들이었지만 어쩌면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들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른다. 작가 최인호는 ‘도시가 죽이는 여자의 이야기’로 자신의 소설을 표현했다. 경아는 작가의 말대로 남성적 문화, 남성적 폭력성을 상징하는 도시의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     영화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이장희), ‘나는 19살이에요’(윤시내) 등의 노래들이 삽입되어 빅히트를 기록했고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영화 음악만을 따로 모아 독립 앨범으로 출시했다. 이후 OST 앨범 붐이 일기 시작했다.   ‘별들의 고향’ 이후 젊은 여성의 삶을 다루는 영화들이 대거 발표됐다. 그 흐름은 ‘영자의 전성시대’(1975), ‘겨울여자’(1977)로 이어졌다. 그리고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효시가 되어 1980년대 ‘애마부인’이 등장하는 시기까지 지속됐다.     비운의 여주인공 경아 역에 아역배우 출신 안인숙이 본격적인 성인 연기를 시도하며 16년 연상의 수퍼스타 신성일과 알몸을 드러내는 베드신을 촬영, 노출 연기를 꺼리던 당시 영화계에 가히 획기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반향 사회 사회적 반향 한국영화 사상 사회 구조

2024-07-03

[이 아침에] 마음이 소금밭

 마음이 소금밭이다. 우크라이나 수도로 향한 러시아의 총부리는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금방이라도 온 세계가 전쟁에 휘말릴 것 같은 불안함이 검은 곰팡이처럼 마음속에 피어난다.   뿐만 아니라 5년 동안 한국의 운명을 짊어질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의 선거판은 혼돈의 무덤 속에 갇힌 듯 답답하기만 하다. 70년대 산업화라는 우산 밑에서 인권이 짓밟혀도 그러려니 받아들였던 문맹에 가까운 무지가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개발붐을 타고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빈부의 격차를 넓힐 때 서민은 점점 더 빈곤 속으로 빠져들었던 70년대, 먹고 사는 것 이외에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없었던 몹시도 궁핍한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반공을 부르짖으며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다. 초가지붕을 걷어내던 농촌운동은 새벽종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고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몰려드는 젊은이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은 탈농촌화를 만들고 ‘영자의 전성시대’는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시대적 비극이었다.   버스 안내원을 하다 버스에서 떨어져 팔을 잃게 된 영자는 산업재해를 몸으로 떠안아야 했다. 장애가 된 영자가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던 창수의 가난이 오히려 순수해 보이는 착시 현상까지 일으켰다.     영자와 창수가 살았던 그 시절, 부의 불균형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였다고 지적할 만한 그 누구도 없었다. 오직 그 소설을 발표했던 작가 조선작만이 밑바닥에서 살아가던 이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었다.   소설가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경아도 마찬가지였다. 원치 않는 관계로 임신을 하게 된 그녀는 결국 눈밭에서 약을 먹고 목숨을 끊는 결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만 낳았더라면 그녀의 인생은 물질의 풍요를 만끽하는 안방 마나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불법 낙태 수술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그녀가 정착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별들의 고향’의 인기 때문에 호스티스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줄을 이어 상영됐다. 성매매를 하는 그녀들의 딱한 속사정이 사람들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감동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가난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은 늪처럼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과거에 무슨 직업을 지녔든 어두운 과거를 딛고 성장했다면 박수를 받을 일이지만 보복의 칼날을 준비하는 사람에게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서민을 위한 사회 구조를 바꿀 의지는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편법과 꼼수로 재물을 쌓아 올린 사람이 하루아침에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시절, 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읽는 재미라도 있었다. 지금은 감동의 틈마저도 없다. 비판의 감각을 잃어버린 시절에 문학도 제 역할을 잃었으니 산업의 역군이라고 불리면서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일터로 내몰렸던 서민들의 희망을 누가 지켜줄 것인가.  권소희 / 소설가이 아침에 소금밭 마음 소설가 최인호 사회 구조 버스 안내원

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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